조선의 여덟 천민 정책,백정

조선시대 도축업자

여진족,거란족등 귀화인들

백정도 사람이다. 형평운동 발기문

입력시간 : 2019-05-20 15:59:19 , 최종수정 : 2019-05-23 07:53:03, 김태봉 기자


조선의 여덟 천민 정책, 그 중 백정

 

백정은 원래 중국에서 백성을 가리킬 때 썼던 말로, ()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정()이란 군대에 가거나 군대를 지원할 의무를 가리킨다. , 농사를 짓고 살면서 군역의 의무는 없는 사람들을 백정이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대대로 물려받거나 개간한 땅에서 농사를 지은 뒤 나라에 세금을 바쳐야 했다. 자기 땅이 없는 백정들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농민을 가리키던 고려 시대와 달리 조선 시대의 백정은 소나 돼지 등 가축을 죽여 고기를 만드는 천민이었다. 원래 가축을 도살하는 일은 주로 고려 때 귀화해 온 북방 민족들이 맡고 있었다.

 

이들은 성안에서도 성밖에서조차 살수 없었다.

마을 저멀리 외딴곳에서 살며, 어린아이 앞에서도 머리 숙이고, 결혼할 때 가마도 안되고,죽을 때 상여도 지고 갈 수 없었다.

 

금기를 어기면 집단 처벌도 가능했다.

노비,광대,기생,공장,무당,승려,상여꾼,백정등 이들에 대한 대우와 차별,조선 여덟 천민들 가운데서도 백정에 대한 이런 차별은 없었다.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체험

“......불교를 좋아하여 살생을 경계했다.

.....도살하는 방법도 능숙하지 않았다.“

-서긍의 고려도경중에서-

 

고려 사람들이 요리한 고기는 먹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푸념하던 중국사신그런데 머지않아 조선에는 소,돼지 잡는 전문 도축업자가 생겨난다.

 

그들은 누구?

고려시대 전쟁에서 끌려온 여진족 거란족 포로나 귀화인들 이었다.

조선 초기 조선에선 이들을 백성을 뜻하는 백정이라 부르고 정착생활을 유도하였다. 그러나 ”.....크고 작은 도적의 태반이 백정으로 ......다른 군으로 왕래를 금지시켜야........“

-세조실록, 1456328일 중-

이들 귀화인들은 유목민의 후예답게 농사엔 서툴지만 날쌔고 용맹하며 가축 손질에 능숙했던 사람들이었다.

 

좀처럼 농경민이 되기 어려웠던 유목민의 후예들이었으며, 게다가 나라에 흉년이 드는 것은 함부로 잡은 소의 원한이 쌓여 천지의 화기가 손상된 탓이옵니다.” 라고 양반들은 나라의 어려움을 이들의 탓으로 돌리기도했다.

소고기 유통을 엄히 단속하기 위해 밀도살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고기를 먹으려는 욕망은 식을 줄 몰라서.

도살이 성행하며 소 한 마리 값이 베 80~90필에 이르기 까지...”

-중종실록,1533714일 중-

 

백정은 소와 말을 잡아먹는 주범이니 항상 단속하라!

허락없이 가축을 도살하면 장형 100,유형 3000, 몸에 먹물 새기는 형벌을 적용하였다.

 

앞에선 단속하고 뒤에선 찾는 양반들 그리고 주는 것 없이 미워했던 백성들의 냉대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를 금할 길 없다....”

-1925백정도 사람이다.’ 형평운동 발기문 -

 

 

백정들이 저울에다 자신들의 인권을 올려놓은 것은 일제강점기 중반 무렵에 들어와서였다.


<EBS 인용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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